[건강 칼럼] 알코올사용장애의 치료
[건강 칼럼] 알코올사용장애의 치료
  • 세종경제뉴스
  • 승인 2023.05.1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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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안성배 과장.
청주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안성배 과장.

알코올사용장애 환자가 외래에 방문할 때는 대다수의 경우 가족들과 함께 내원하게 된다.

처음 내원하면 함께 온 가족들이 면담자의 앞자리에 앉고, 본인은 뒤쪽에 앉거나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수차례 경험을 하다보니 이제는 ‘환자분이 이 분이구나’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지만, 경험이 부족했을 땐 함께 온 가족이 상담을 받으러 오신 거라고 착각할 때가 있었다. 한참 동안 가족의 얘기를 듣다보면 “실은 저 사람이 술 조절이 안 돼요.”라고 털어놓아 당황한 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분이 하는 말씀은 “내가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라며 모른 척 둘러대는 것이었다.

환자 “내가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회피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알코올사용장애 환자는 본인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함께 온 가족들은 환자의 이런 태도에 또 한 번 속이 상해 진료실에서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잦다. 알코올사용장애에서는 회피행동이 환자의 주된 문제행동인데, 진료실에서도 이런 문제행동이 반복되는 것이다.

가족들은 담당의사가 크게 혼을 내주거나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길 기대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그런 말을 해주길 요구하는 일도 잦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러한 접근방식은 효과가 없다. 간단한 증거를 대자면 이미 집에서도 충분히 화내고 성질내고 욕도 해보고 이혼하겠다 위협도 해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효과는 없었고 환자의 음주 행동은 반복되었고, 오히려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며 술을 더 마시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의사 초년병 시절에는 환자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에게 비슷한 방식의 태도를 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적으로도 상대를 위협하고 비난하는 방식은 문제행동을 바꾸는 것에 효과가 거의 없다.

술 마시는 이유 청취해주는 게 필요

오히려 효과가 있던 것은 심리학책에 자주 나오듯, 먼저 환자의 말을 공감적으로 들어주고 술 마시는 이유에 대한 변명(?)을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통해 먼저 환자가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는구나’라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환자의 술 마시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지, 음주 행동에 대해 동의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후에 술이 인체에 끼치는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하고(주로 단점이겠지만), 환자에게는 본인의 행동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회피적이고 수동적이기만 했던 환자의 행동방식에서 본인이 행동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결과까지 책임지고 받아들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술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선택을 통해 일상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경험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일상에서 의미 있는 것들 경험케 하는 것 중요

여기에서 의미 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하고 그럴듯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과 대화하기, 식사하기, 동네 산책하기 등과 같이 사소하다면 사소한 경험들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경험들이 쌓이게 된다면 무료하고 술이 생각나는 시간에 늘 습관처럼 하던 음주 행동이 아닌, 효과적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런 치료적인 변화는 순식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계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끝으로 가족들은 환자가 실패하고 재발했을 때 환자를 비난하고 원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함께 병원에 내원하여 주치의와 또 다른 효과적인 대응책을 상의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되겠다.

안성배 (청주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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