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불편할뿐, 불행하지 않아"
"장애는 불편할뿐, 불행하지 않아"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7.06.13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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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규 회장, 교수 시절 녹내장으로 시력 잃어도 포기하지 않아
다양한 활동 제2의 삶 시작 "시각장애인 당당히 사회로 나아가"
충북 도내 유일한 시각장애인들의 열린 복지시설 '무지개도서관'

눈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눈빛을 잃은 나는

그들 앞에서 민낯을 드러낸 채

움츠리고 살아왔다

 

이젠 나도 고개를 들고 싶다

그들도 내 마음을 읽을 수 없도록

검정안경을 쓰고

미소로 눈빛을 대신 해야겠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최용규 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장이 시각장애인의 현 주소를 이야기 하고 있다 / 사진=박상철기자

이 시를 쓴 사람은 최용규 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장이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편견과 외면 속에서도 당당하게 한 발 한 발 사회를 향해 내디뎌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33년간 교육계에 몸담은 최용규 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회장은 시각장애인이다. 위의 시 ‘당당하게 사는 법’의 저자이기도 하다. 일반 평교사, 교육관련 방송사, 대학 교수 등을 거친 교육의 베테랑이기도 하다.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에서 사회과 교수였던 2003년. 평소 앓던 녹내장이 점점 심해져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됐다. 하루하루가 온통 어둠뿐이었다.

앞을 볼 수 없다는 두려움보다 그를 더 괴롭혔던 건 소통의 단절이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편견과 외면 등이 더해져 더욱 그를 작게 만들었다. 이제 교수 최용규 보다는 시각장애인 최용규라는 잣대로 평가됐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지키고 싶었다.

제2의 삶을 시작했다. 보는 것 빼고는 못할게 없었다.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수필과 시를 쓰기 시작했다. 검은 원고지에 밝은 미래를 적어 내려갔다.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 청주에서는 처음으로 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를 만들었다. 단절된 소통의 물꼬를 터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의 눈부심이 아닌 빛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는 현재 가톨릭시각장애선교회장, 충북 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수석 부회장, 충북 수필 문학회 회원, 무지개 시 사랑 동호회장 등을 맡으며,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들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조력자를 자처 했다.

보건복지부 사회보장통계에 따르면 2017년 4월 기준 등록된 전국 시각장애인 수는 25만2893명. 여기에 충북은 8994명으로 약 전국대비 3.5%의 시각장애인이 등록돼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최 회장은 말한다.

최 회장은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남에게 의존하기 보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특히 시각장애인들 중 후천적시각장애인(일명 중도시각장애)들은 선천적 시각장애인들 보다 더 큰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의 대한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시각장애인들이 90%이상이 중도시각장애인인 만큼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보다 바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용규 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장 / 사진=박상철기자

그러면서 그는 “시각장애인들의 소득 보장을 위한 고용의 기회 역시도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시각장애인이라 하면 안마시술소나 침을 놓는 직업만 할 수 있다는 편협한 시각으로 바로 보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장애인 교육이나, 사회복지 관련 등 다방면에서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맞는 교육과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 반면 일을 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있다면 그들이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시각장애인들의 심리·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도 다양해져야 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실명이나, 병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장애인들이 심리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지금 당장 누가 우리 눈을 가리고 하루만 생활해 보라한다면 과연 물이라도 혼자 먹을 수 있을까?”라며 반문했다.

최 회장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문화·복지 등 다양한 사회 참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확장해야 한다. 현재 장애인활동보조인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모자란 상황에다가 그들에 대한 처우도 낮아 대책 마련이 시급히다"고 꼬집으며 해피콜 및 점자블록, 음성정보단말기 보급 확대해 장애인들이 누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활동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최 회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규 교육과정에 이러한 장애인인식교육 프로그램을 포함시켜 서로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 장애인들도 먼저 노력하고 다가가며, 스스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와 사회라는 한 울타리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충북에는 시각장애인들의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청주에 위치한 무지개도서관 한 곳뿐이다. 일각에서는 시각장애인 전용 복지관이 운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전국 지자체에서 강원, 충북, 전북, 세종에만 시각장애인 전용복지관이 없는 상황이다. 2014년부터 줄곧 복지관 설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예산부족과 의견 불일치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다.

 

◆ 시각장애인의 열린 소통 공간 ‘무지개도서관’

무지개도서관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매달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 사진=무지개도서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한 ‘무지개도서관’은 도내 시각장애인들의 정보·문화·여가 생활을 위한 열린 복지시설이다. 1997년 점자도서실로 개소한 이래 줄곧 시각장애인들의 삶의 질 향상과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2008년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일반인과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탈바꿈하며 이름도 ‘무지개도서관’으로 변경했다.

무지개도서관은 현재 8명의 직원이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점자·녹음도서 및 명함 제작, 점자 및 녹음소식지 제작 보급, 라디오 방송국 운영, 도서관 이용 및 대출·반납, 평생교육 및 여가생활 지원 사업 등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행사 및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6월12일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나와 참석자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 사진=박상철기자

특히, 녹음도서와, 녹음소식지, 라디오 방송국은 직원과 자원봉사들이 직접 녹음과 방송으로 이뤄진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직접 글을 읽어 녹음해 그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평생교육 및 여가 생활 지원사업에는 악기 연주 교실(플루트, 우쿨렐레, 오카리나, 바이올린)과 음악 치료 교실, 민요 교실, 독서토론회, 시낭송 교실, 문학기행, 인문학 아카데미, 작가와의 만남 등이 운영된다.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평소 쉽게 접하지 못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해 문화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다양한 문화 혜택을 제공해 그들이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준다.

무지개 도서관은 일년에 한 번 정기음악회를 진행해 시각장애인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참석해 문화, 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 사진=무지개도서관

이외에도 점자의 날 기념 행사(매년 11월 4일), 정기음악회(연 1회), 시각장애인 음악 경연대회 및 시낭송 대회(각각 연 1회)을 진행한다.

박성주 무지개도서관장

박성주 무지개도서관장은 “현재 우리 도서관은 장소가 너무 협소해 시에 요구해 독립 건물 200평 정도 우리 시각장애인들만 이용하는 도서관이 아닌 일반주민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며 “또, 독서를 통해 책에서 나온 배경지를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체험형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말했다.

 

한편, 무지개도서관은 충복사회복지센터 5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반도서·점자도서·녹음도서·CD도서 등을 포함해 총 1만3078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무지개도서관 이용은 등록 시각장애인과 일반 지역주민이 대상이며, 일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한다.

또한, 책나래 서비스를 이용해 시각장애인은 전화로 대출 신청후 택배로 책을 받을 수 있고, 반납도 택배로 가능하다.

무지개도서관 한켠에 마련된 녹음 부스에서 자원봉사자가 녹음도서의 녹음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사진=박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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