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 맺고-15번 만나고-940권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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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7.07.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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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살리기…풀뿌리 문화‧경제 선순환 운동
지역출판물과 베스트셀러의 맞대결, 전국적 화제

숫자로 본 상생충북 1년

부산문화재단과 부산지역 문화 활동가들이 상생충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청주를 찾았다.

7월1일 부산문화재단과 부산지역 문화 활동가 40여명이 청주를 찾았다. 청주의 수상한 몇 가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동네서점·지역출판 살리기 운동’이었다.

“부산에서도 비슷한 목적의 운동이 펼쳐지지만 관(官)에서는 ‘행사는 하되, 책을 구매할 수 없다’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단다”는 것이 부산 활동가들의 고충이었다. 캠페인만 있고 현실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왜 우리는 안 되는데 청주는 되냐?”는 것이 그들의 질문이었다.

청주의 동네서점·지역출판 살리기 운동이 남다른 것은 민(民)에서 비롯됐고 민(民)이 주도했으며, 관(官)의 지원이 아닌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상생충북(book)’은 충북지역출판·동네서점살리기협의회(회장 송재봉)의 사업브랜드다. 2016년 6월21일 청주시내 우리서점에서 협의회 발족식과 ‘상생충북 코너’ 개장식을 하면서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상생충북 운동’은 한 마디로 말해 지역작가가 쓴 지역출판물을 동네서점에서 우대 판매하는 것이다. 우대 판매란 베스트셀러에 준하는 위치에 진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동네서점들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대신 협의회는 동네서점 이용하기 운동을 적극 전개하기로 했다.

호혜를 전제로 한 협의는 일사천리로 현실화됐다. 청주시서점조합에 소속된 서점 중에서 일반 도서를 취급하는 17개 서점이 상생충북에 동참했다. 이들 서점에는 가장 좋은 자리에 ‘상생충북 코너가 마련됐다. 협의회에는 충북NGO센터를 중심으로 청주시서점조합, 작가회의, 문인협회, 지역출판사 4곳, 청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 등이 주력으로 참여했다.

2016년 6월21일 청주 우리문고에서 상생충북 코너 개장식이 열렸다.

1년여가 흐르는 동안 청주시 예쁜 서점지도를 만들어 곳곳에서 배포하고 젓가락페스티벌, 공예페어, 직지코리아, 야행 등의 행사에서 홍보부스를 운영했다.

지역작가의 지역출판물 중에서 추천도서를 선정하고, 작가와 독자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운동을 지원하는 기관단체들과 협약을 맺고 동네서점 이용하기 운동을 전개했다.

동네서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청주시내 12개 도서관을 운영하는 청주시도서관평행학습본부와 도서관들이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도록 합의했다. 그동안의 도서구매는 입찰방식이었다. 실제서점을 운영하지 않는 이른바 페이퍼컴퍼니들이 계약을 독식했었다. 하지만 협약 이후에는 2000만원 이하 수의계약으로 나눠 도서를 수시 구매하고 있다.

2017년 6월15일에는 상생충북 1주년을 기념하는 토크콘서트가 CJB청주방송 라디오 ‘길원득의 음악앨범’ 공개방송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맨발’과 ‘가재미’ 등으로 팬을 확보하고 있는 문태준 시인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했다. 토크콘서트의 타이틀은 ‘동네서점아, 힘내’였다.


10번의 업무협약…네트워크가 힘이 되다

청주 YWCA와 업무협약식.

상생충북 운동이 힘을 발휘한 것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모든 기관단체와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상생충북의 주력은 청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다. 상생충북은 2016년 6월21일, 동네서점에 상생충북코너를 마련하기에 앞서 6월3일 작은도서관협의회와 1호 협약을 체결했다.

작은도서관협의회는 이미 2015년, 청주시서점조합과 협약을 맺고 동네서점 이용하기 운동을 벌여오고 있었다. 작은도서관협의회는 상생충북 운동이 시작되면서 작은도서관 별로 ‘작가와 만남’ 행사 등을 진행했다.

두 번째 협약은 2016년 7월20일,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과 맺었다.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도 상생충북의 든든한 파트너다. 청주시는 2016~2020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문화도시 청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네서점 여기 있수다 전시회.

상생충북은 이 ‘문화도시 청주’와 협력하고 있다. 청주시 예쁜 동네서점지도 제작과 2016년 10월13일 인문학 콘서트 ‘내 영혼의 책빵’, 2017년 토크콘서트 ‘동네서점아 힘내’ 등은 모두 ‘문화도시 청주’와 협력사업으로 진행한 것이다.

김호일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사무총장은 “동네책방은 감성과 지성을 쌓을 수 있는 영혼의 정거장 같은 곳이다. 이런 동네책방이 사라진다면 도시재생, 문화재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화도시 청주에서 제일 먼저 부흥돼야 할 것은 동네책방이다. 상생충북 운동은 협약만 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쉼 없이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상생충북은 이어 ▲청주시사회복지협의회(2016년 8월2일) ▲옥천순환경제공동체(2016년 8월18일) ▲청주YWCA(2016년 9월8일) ▲청주여성인력개발센터(2016년 10월11일) ▲청주시의회 (2016년 10월24일) ▲충청북도교육청(2016년 12월29일) ▲충청북도노인종합복지관(2017년 4월14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2017년 7월10일) 등 모두 10개 기관단체와 협약했다.


7권의 추천도서…독자와 만남 15차례

신준수 시인의 작가와 만남 행사

글을 쓰고 나서 책으로 묶는 것은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서다. 창작과 출판은 구매와 독서로 완성된다. 지역작가가 쓰고 지역출판사가 펴낸 책은 오히려 소비자인 지역독자에게 생경하다. 그런 낯선 책들이 서점 진열대의 중앙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동네서점들의 협조로 기울었던 경기장은 평평해졌지만 그것만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독자들에게 권할 책을 선정하기로 했다. 상생충북 도서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승환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이미자 청주문인협회 사무국장, 이종수 청주시 시인(작은도서관협의회 부회장), 류정환 시인(도서출판 고두미 대표), 이연호 꿈꾸는 책방 대표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2016년 7월의 추천도서로 <즐거운 소풍길>(직지, 변광섭 저)을 선정했다. 이어 8월에는 <토끼똥에서 녹차냄새가 나요>(직지, 신준수 저)가 뽑혔다. 이때부터 독자와 만남이 시작됐다. 독자와 만남은 청주시내 작은도서관이나 동네서점에서 열렸다. 동네서점이 지역작가와 독자들이 만나는 문화공간으로 거듭 난 것은 상생충북 운동의 으뜸 성과로 꼽힌다.

임준순 청주시 서점조합장(열린문고 대표)은 “동네서점의 현실이 열악하다 보니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가게에 불과했다. 그런데 상생충북 운동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서점이 지역문화의 모세혈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10여 년 전 서점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찾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2016년 9월부터는 두 달에 한 번씩 추천도서를 선정하고 있다. 지역출판의 현실 상 매달 한 권을 선정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여유를 갖고 독자와 만남을 추진하자는 취지에서도 격월에 한 권씩 선정하게 됐다.

이후 추천도서는 ▲2016년 9·10월 <상처를 만지다>(고두미, 류정환 저) ▲11·12월 <파과>(고두미, 전영학 저) ▲2017년 1·2월 <어제의 책, 내일의 책>(무늬, 소종민 저) ▲3·4월 <껌 먹는 두더지>(직지, 신준수 저) ▲5·6월 <도플러효과에 속다>(고두미, 이재표 저) 등이다.

상생충북은 5·6월 선정도서까지 모두 15차례 독자와 만남을 진행했다.
 

1000권을 채우지는 못했지만…940권

상생충북 1주년 공개방송. 청주방송 라디오 길원득의 음악앨범 '동네서점아 힘내!'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거나 공룡 출판사가 막대한 홍보비를 투하하지 않는 마당에 책이 저절로 팔릴 리는 만무하다. 상생충북 운동 이전의 지역출판물은 정상적인 유통방식으로 독자를 만날 수 없었다.

작가가 자비(自費)로 출판한 뒤 서점에 판매를 부탁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박혀 먼지만 쌓이기 일쑤였다. 아니면 출판기념회를 열어서 지인들에게 책을 팔아야 했다.

상생충북 운동은 지역작가가 글을 쓰고 지역출판사가 책으로 엮어서 비록 동네서점이라는 한정된 공간이지만 서점을 통해 독자와 만나게 된 첫 시작이다. 비단 충북뿐이 아니라 지역에서 정상적인 유통방식에 의해 책이 팔리기 시작한 첫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1년 동안 몇 권의 책이 팔렸을까? 2016년 6월21일을 기점으로 지난 6월 말까지 1년 동안 동네서점 등을 통해 정상 유통된 지역출판물은 모두 940권으로 집계됐다. 동네서점을 통해 757권이 유통됐고, 청주문인협회에 131권의 주문이 들어왔다. 도서출판 직지와 고두미도 각각 12권과 40권을 거래했다.

이성우 도서출판 직지 대표는 “20여년 동안 지역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유통의 한계에 직면해서 제대로 된 책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제는 지역서점을 통한 유통의 길이 열린 만큼 기획과 작가의 역량, 디자인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른 출판사들과 겨뤄보고 싶다”고 밝혔다.

송재봉 충북지역출판·동네서점살리기협의회장은 “분권과 균형발전의 시대에 지역작가와 지역출판, 동네서점 등에서 민간주도의 문화운동과 선순환이 싹이 트고 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 더 많은 기관단체와 협약을 통해 상생충북 운동이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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