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청주(淸州) '문화'가 되다 - (주)조은술 세종
전통주, 청주(淸州) '문화'가 되다 - (주)조은술 세종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11.22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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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은술 세종이 생산하고 있는 증류식 소주 '이도'/사진 박상철

[세종경제뉴스 정준규기자] 한 나라의 술은 맛뿐 아니라 전통도 함께 머금고 있다. 잘 빚은 한 잔 술에서 그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나라 술일지라도 지역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자연환경과 풍토는 물론 인심까지 그 술맛에 녹아있다. 오래전 명맥이 끊긴 청주 술을 재현해 지역 전통을 이어가는 회사가 있다. 풍미로 즐기는 술을 넘어 지역 고유의 문화를 빚고 있는 ㈜조은술 세종을 찾았다.

 

청주 전통주, ‘차별화’가 곧 ‘경쟁력’

청주시 사천동에 위치한 (주)조은술 세종 사옥/사진 박상철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술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청주시 사천동에 위치한 ㈜조은술세종을 찾아가는 길. 가는 내내 시인 박목월의 <나그네>시구가 머리를 맴돌았다. 남도 삼백리는 아니더라도 우리 지역 가까이에서 술익는 풍경을 볼 수 있단 사실에 마음이 들떴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전통주와 잘 어울리는 예쁜 간판이 먼저 맞는다. ‘조은술 세종갤러리, 찾아가는 양조장’이란 간판문구가 기대감을 더했다. 사옥에 발을 들이자 구수한 술향이 코를 자극한다. 시골 양조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취를 복판에서 느낄 수 있단 사실이 신기했다.

“(주)조은술세종은 막걸리,과실주,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전통주 회사죠. 지금까지 40여 종 정도를 개발했는데 혹시 우도땅콩막걸리라고 들어보셨나요?” 집무실 한편에 전시된 막걸리를 하나 골라 ㈜조은술세종 경기호 대표가 말을 건넸다.

제주도 인기 막걸리가 청주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우도 땅콩 막걸리는 말 그대로 우도에서 생산한 땅콩을 원료로 쓴다. 이곳에서 빚은 우도 땅콩 막걸리는 다시 제주도로 역납품돼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조은술 세종이 만드는 다양한 원료의 막걸리 제품/사진 박상철
조은술 세종 막걸리 중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막걸리데이'/사진 박상철

㈜조은술세종이 만드는 이색 막걸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괴산 대학찰옥수수를 이용해 만든 옥수수막걸리를 비롯해 알밤 막걸리.바나나 막걸리,뽕잎 막걸리 등 원료부터가 남다르다. 한류열풍 덕에 해외 수출도 늘어 일본,중국,싱가포르,홍콩,인도네시아 등지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경 대표가 조은술세종을 창업한 건 지난 2007년. 15년 몸담은 전통주 유통업을 접고 양조장을 차린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청주에도 예전에는 큰 양조장들이 몇 있었죠. 산업화로 양조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청주 전통주도 거의 명맥이 끊겼죠. 오랫동안 전통주유통사업을 하며 이런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청주를 대표하는 전통주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그때 과감히 결단을 내렸죠”

(주)조은술 세종 경기호 대표가 막걸리 원료로 쓰이는 유기농 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능성만 믿고 시작한 창업...‘역경’이 ‘자산’되다

창업 전 주변 반대도 심했다. 기존 양조장들도 운영난을 견디지 못해 폐업하던 시기라 경 대표의 창업을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미 사양세로 돌아선 전통주 사업을 왜 손대려 하는냐”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경 대표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전통주가 홀대받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 진가를 알게 될 거라 확신했다. 결심이 서자 실행도 빨라졌다. 지금의 공장부지를 매입해 양조장 설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15년간 전통주유통사업을 하며 익힌 노하우를 토대로 기술력을 보완했다. 유통업을 하며 알게 된 전국의 내로라하는 공장장들도 경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창업만 하면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경 대표에게도 난관이 닥쳤다. 공장장이 제조를 전담하고 경 대표가 유통을 책임지는 분업방식이 문제였다.

“15년간 전국 양조장을 돌며 최고의 전통주를 맛 본 저였기에 제가 만드는 술은 그걸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그런 맛이 나오질 않는 거예요. 기존의 막걸리로는 승부수를 띄울 수 없었죠 ‘내가 유통만 담당해서는 답이 없겠다’ 싶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조에 뛰어들게 됐죠.

15년 간 전통주 유통업을 하며 보고 들은 경험이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 하는 경기호 대표/사진 박상철

‘소비자가 원하는 차별화된 막걸리를 만들자’는 원칙을 세우고 경 대표는 전국 양조장을 발로 뛰었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와 자료를 그만의 색깔로 접목해 조금씩 틀을 갖추어 갔다.

경 대표가 가장 신경을 쓴 건 누룩이었다. 누룩을 제대로 띄어야 맛과 향이 뛰어난 막걸 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누룩을 만드는 건 시간과 온도의 싸움이었다. 수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었다. 제조경험이 전무한 경 대표에게는 고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양조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없던 때라 순전히 도전과 실패를 통해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미생물이 얼마나 민감하냐면 어느 곳에서 잘 만들어지던 누룩이 장소를 바뀌면 제 기능을 잃더라구요. 옮긴 장소의 습도와 온도에 누룩이 영향을 받은 거죠. 양조장이 갖고 있는 효모균이 막걸리 품질에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기농 쌀과 누룩을 넣고 발효 중인 막걸리/박상철 기자
좋은 원료와 양질의 누룩이 조은술 세종의 막걸리를 만들어낸다./사진 박상철

 

‘좋은 재료’가 ‘좋은 술’을 만든다

2010년부터 한류바람을 타고 전 세계적으로 막거리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창업을 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밀려드는 물량에 연일 즐거운 비명이 이어졌지만 점차 열풍의 속도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이런 막걸리 붐이 일 거라 상상도 못했지만 급격한 호황을 대비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이 틈을 타 대기업들이 막걸리 시장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조직적 홍보로 밀고 들어오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더라고요. 막걸리 붐은 이는데 지역 양조장들은 갈수록 더 어려움을 겪게 됐죠. ‘우리가 살 길은 제품을 다양화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란 생각이 더 확고해졌죠. 좋은 재료로 소비자가 원하는 맛을 만들어 내면 그게 경쟁력이 아닐까 생각했던 거죠”

경기호 대표는 우선 원료 선택에 차별화를 기했다. 단가가 높아 업계가 주저하던 유기농쌀,명품쌀을 과감하게 투입해 막걸리 품질을 높였다. 여기에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을 가미해 독특한 막걸리를 만들어냈다. 국내외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청주를 대표하는 막걸리로 맛과 이름이 알려지면서 매출도 크게 늘었다.

지난 괴산유기농산업엑스포에서 건배주로 채택된 증류식 소주 '이도'/사진 박상철
인천국제공항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이도'/사진 박상철

조은술세종이 3년전부터 만들고 있는 증류식 소주 ‘이도’도 큰 인기다. 이도는 세종대왕의 본명이다. 치료차 초정에 들른 세종대왕이 고을 사람들에게 술과 고기를 베풀었다는 야사에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이도도 유기농쌀을 이용해 만든다. 한 모금 입에 물고 음미하다보면 톡 쏘는 맛과 그윽한 향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알코올 도수 42도나 되는 꽤 얼큰한 술이지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은 오히려 부드럽다.지난해 괴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 때엔 건배주로 쓰일 만큼 품질도 인정받았다.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술품평회 때도 국내외 바이어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전통주 제조를 위해 조은술세종이 소비한 유기농쌀은 약 20만톤. 지역의 우수한 농산물을 대량 구매해 농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경 대표가 느끼는 보람 중 하나다. "같은 용량이라고 했을 때 증류식 소주가 막걸리보다 유기농 쌀이 7배나 더 들어갑니다. 증류식 소주만큼 쌀 소비에 기여하는 것도 없죠. 특히 요즘은 유기농쌀과 일반쌀 가격차가 크지 않아 유기농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농민분들이 고맙다는 말을 전할 때 큰 보람을 느끼죠.”

 

‘찾아가는 양조장’...6000여명 발길 이어져

조은술세종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찾아가는 양조장’은 향토 양조장을 활성화 해 전통주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테마관광으로 연계하는 프로그램이다. 선정된 양조장들은 오래전부터 농촌지역에서 운영돼온 양조장들이었다. 도심지역에서 그것도 10년밖에 안된 조은술세종이 선정된 건 이례적이었다.

“처음에는 심사위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죠. 하지만 전 청주 전통주의 명맥을 강조했죠. 호황을 누렸던 과거 청주 양조장을 이야기하며 산업화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서 좀더 많은 이들이 전통주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면 문화는 다시 살아날 것이고 역사도 새롭게 쓰여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청주에도 ‘찾아가는 양조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6000명이 넘는 체험객들이 공장을 찾았다. 체험맥들은 술 제조과정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만든 술을 시음해 볼 수 있다. 현재는 프로그램 정비를 위해 잠시 중단한 상태이지만 경기호 대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진천 덕산양조장에서 80년 넘게 사용했던 막걸리 항아리/사진 박상철
1935년이란 옹기 제작연도가 겉면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사진 박상철

체험객들이 80년 넘은 술 항아리에 직접 술을 담가 나만의 술을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도 이번에 선보일 예정이다. “전통주는 술이기 이전에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 그 사람들이 애정을 갖고 사용해 줘야 문화는 생명력을 얻게 되죠. 이런 측면에서 좀더 많은 분들이 전통주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사업을 키우는 것보다 우리 술, 좋은 술을 어떻게 복원해 장기적으로 이어갈 것인지가 더 큰 고민입니다. 매출신장도 중요하지만 전통주의 표준화와 소비자와의 소통을 이어가는게 제 사업의 최종 목표입니다.”

(주)조은술세종 경기호 대표와 부인 이승애 이사/사진 박상철

㈜조은술세종은 내년에 우리지역에서 생산된 고구마를 이용해 고구마 막걸리를 내놓을 계획이다. 유기농 쌀과 유기농 홍삼을 혼합한 유기농홍삼주도 시판 준비를 마치고 이르면 올 12월 소비자들을 찾는다. 차별화된 원료로 남과 다른 전통주를 만들겠다는 경 대표의 포부는 해를 거듭해도 변함이 없다. 전통주를 통해 일진보된 문화를 창출하고 그 문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은술세종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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