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출범과 대 중국 통상
트럼프 출범과 대 중국 통상
  • 윤동진 주 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
  • 승인 2017.01.1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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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진 주 제네바 공사참사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대선이 있는 해에는 잠재된 요구가 분출된다. 지난해 미국은 통상 분야 기린아로 촉망받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2차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설계했고, 냉전 이후에는 세계화 복음 전파에 앞장섰던 중심지, 미국에서 세계화가 힘을 잃은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1999년 시애틀에서 목격한 시위대가 여론을 점령했다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편 그룹의 일부가 개종했다고 봐야 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선봉에는 무역대표부(USTR)가 있었다. USTR은 1962년 창설 이후 200명 내외 정예 인력으로 각종 통상 이슈에 깊이 관여해 왔다. 트럼프는 여기에 더해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하는 한편, 상무부의 통상 기능도 키우려 하고 있다. 즉 삼두체제를 가동함으로써 통상 정책의 비중이 커질 전망이다.


트럼프가 인상 깊었다고 말한 다큐멘터리 ‘중국에 의한 죽음’을 보면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미국이 중국을 오래 방치한 때문에 제조업 위기가 심화되었고 미국의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명의 책 저자이며 다큐를 제작한 나바로 교수가 NTC 의장에 임명되고 과거 1980년대 중반인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벌써 미국통상대표부(USTR) 차석으로 이름을 날리던 라이트하이저를 USTR로 선택해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새 통상 팀은 미국이 무역자유화에 힘써서 결국 중국만 좋은 일 시켰다고 본다. 상대편은 현행 규범의 허점을 이용해서 계속 반칙하고 골까지 넣는데 워싱턴 관료들은 자유무역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정작 자국민의 일자리가 줄고 삶이 악화되는 현실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반칙 유형으로는 느슨한 노동 및 환경 규제, 지식재산권 침해, 인위적 환율 개입, 불법 보조금 지급 등을 들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오바마 행정부도 여러 차례 지적했던 사안들이다. 하지만 대응에 차이가 있다. 오바마는 TPP 협상에서 노동과 환경 등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재정비하고 이를 확산시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으로 접근했다면 트럼프는 당장 문제를 꺼내 놓아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상황의 긴급성을 고려하면 TPP 출범 보다 통상 현안 제기, 관련 긴급 조치 발동 등이 우선될 수 있다. WTO 탈퇴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 등을 보면 WTO가 중국에 유리하게 기능했다는 보고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미 통상 팀이 가진 TPP와 관련한 시각이 필요성 또는 여부의 문제이기 보다는 선후의 문제, 즉 시점의 선택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2009년 이후 WTO에 총 24건의 분쟁을 제기했고 그중 15건은 중국이 대상이었다. 즉, 오바마 행정부도 공세적 통상을 해 왔다. 특히 지난해 9월 농산물 보조 상한(AMS) 위반 주장 건, 12월의 농산물 저율관세할당(TRQ) 이행 협의 요청 등은 WTO 출범 이후에 서로가 조심스러워 하면서 기피했던 농업 문제를 법정에서 따져보자 달려든 셈이다.

중국 역시 가입 조건에서 약속한 시장경제지위(MES)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12월에 미국, EU에 분쟁 절차 개시를 요청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다수 전문가들은 2017년에 통상 분쟁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본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결과, WTO에 부여된 통상 분쟁 해결 기능은 대폭 강화되었지만 제네바에서 보는 시각은 시간과 비용, 이행강제 등 근본적 숙제가 남아있다.


미국과 중국이 치고받기로 가면 양국과 교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또한 WTO에서 허용한 긴급조치(반덤핑 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를 일단 발동하자는 측과 이를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하는 사례가 늘 공산이 크다. 게다가 WTO 위반이지만 변형된 소비세 또는 법인세 등으로 국내 규제를 가장한 사실상 차별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다.


법정에서 다투기 보다는 절충점을 찾아 합의 조정하고, 최소한 공감대를 모아 분쟁 확산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에서 배운 교훈이다. 문제는 합의와 공감대까지 이르는 길이 너무 멀고 어렵게 설계된 현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WTO 의사결정 구조와 이행 시스템이 먼저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 2017년, 국제 통상은 용호상박으로 얽혀 있어 당분간 관망과 진통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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