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꿈, 한 그릇에 담기다.”
“영조의 꿈, 한 그릇에 담기다.”
  • 김정희 진지박물관장
  • 승인 2017.05.2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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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색으로 공평한 인재등용 약속한 ‘탕평채’
동서남북 네 방향을 나타내는 4색 탕평채. 이는 영조 당시 당파를 상징한다. 사진=진지박물관

음식이 담고 있는 역사와 문화,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표 음식으로 영조대왕의 탕평채가 있다. 83세까지 장수를 누렸던 영조이지만 그다지 먹는 것을 즐기는 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의 고추장 사랑은 순창고추장의 브랜드화의 주요 스토리가 된다.

잘 차려진 현대의 한정식에서 탕평채라는 음식의 존재감은 어느 정도일까?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과 숙종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워 보위를 위협했던 이인좌의 난. 영조는 몹시도 두려웠을 것이다.

1694(숙종20)년 숙의(淑儀) 최씨가 9월13일 인시(寅時 오전 3∼5시) 창덕궁 보경당에서 영조를 낳았다. 6세 때 연잉군(延礽君)으로 봉해졌고 9세에 혼인을 하고 19세에 궁에서 나와 창의궁(彰義宮)에 살았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으나 출생부터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영조. 병약했던 경종, 노론은 경종의 무자다병(無子多病)을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책봉(世弟冊封)과 세제대리청정을 서둘렀다.

그러자 소론은 경종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죽고 세제인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자, 신임사화의 옥사를 문책하게 되면서 노론의 지위가 회복되었다.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정치적 지위를 위협받게 된 소론은 남인들을 포섭해 영조와 노론의 제거를 계획하게 된다.

3월 15일 이인좌가 청주성을 함락함으로써 난은 시작되었다. 경종을 위한 복수의 기(旗)를 세우고, 경종의 위패를 설치해 조석으로 곡배하였다. 그리고 이인좌를 대원수로 한 반군은 청주에서 목천·청안·진천을 거쳐 안성·죽산으로 향하였다.

신천영의 난이 진압된 상당산성. 사진=문화재청

그러나 북상하던 반군은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게 격파되었고, 청주성의 신천영은 창의사(倡義使) 박민웅 등에 의해 상당성(上黨城)에서 궤멸되었다.

이 난으로 인해 영조의 즉위 초부터 주창되어온 탕평책의 실시는 명분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그리고 왕권의 강화와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영조의 꿈이 탕평채라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탕평채는 1700년대 말의 문헌인 〈경도잡지(京都雜志)〉〈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19세기 말 〈시의전서〉에 나온 탕평채의 조리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6가지 색 탕평채. 사진=진지박물관.

“묵은 가늘게 채치고 숙주와 미나리를 잘라 무친다. 쇠고기는 다져서 볶아 넣고 숙육(수육)은 채쳐 넣는다. 깨소금, 고춧가루, 기름, 초를 합하여 지령(간장)에 간을 맞춰서 묵과 한데 무쳐 담고, 위에 김을 부숴 얹고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린다.”

시기를 두고 각각의 조리서에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진 탕평채. 당시 정파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져 조선왕국의 정치가 점점 무력화되면서 여론이 분열되었다. 영조는 국론 화합을 위해 여러 정파와 신하들을 모아 놓고 탕평책을 내 놓았으며 그 취지를 음식을 통해 설명한다.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색깔이 청색, 백색, 적색, 흑색이기 때문에 동인은 푸른색의 미나리, 서인은 흰색의 청포묵, 남인은 붉은 색의 쇠고기, 북인은 검은색의 석이버섯, 혹은 김 가루로 정치세력을 나타냈다. 그리고 당시 주세력이었던 서인을 나타내는 흰색의 청포묵이 주재료가 되었다.

영조는 음식에 있어 여러 재료와 양념이 잘 섞어져야만 영양 있고 맛이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 듯이 서로 다른 정파의 신하들이 같이 어우러져 통합의 정치를 할 경우 더욱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설득을 했다. 따라서 이를 논하는 자리인 연회 음식상에 올라 왔다 해서 탕평채라 하였다 한다.

네 가지 색이 어우러져 탕평채가 완성된다. 사진=진지박물관

탕평은 ‘무편무당왕도탕탕(無偏無黨王道蕩蕩) 무당무편왕도평평(無黨無偏王道平平)’, ‘치우치거나 무리수가 없으면 왕도가 편하다’라는 말의 ‘탕’과 ‘평’을 따 온 말이다. 이 같은 말은 한 나라를 책임지는 왕은 정파와 당파를 초월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공평하게 인재를 등용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5월9일 제19대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이제 네 가지가 아닌 형형색색의 재료를 어떻게 조화롭게 섞어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담아낼 것인지를 고민 할 때이다. 한 그릇에 담긴 영조대왕의 꿈, 이제는 우리의 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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