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원 파이터 ‘주먹은 울어도 인생은 웃으리’
미화원 파이터 ‘주먹은 울어도 인생은 웃으리’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7.09.28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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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꿈꿨던 유도 유망주, 생계 문제로 환경미화원 선택
‘주먹이 운다’에서 인간 청소기로 ROAD FC 데뷔한…최종찬
2015년 12월 중국 상해에서 열린 ROAD FC 027에서 첫승을 올리고 기뻐하는 최종찬 씨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환호성 그리고 화려한 조명 아래 케이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전율을 느낍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냥 좋습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길거리 파이터들의 대결로 세간에 화제가 됐던 XTM(케이블TV)의 인기 프로그램 ‘주먹이 운다’에 청주를 대표해 출연했던 최종찬(37) 씨의 인생유전은 각본 없는 드라마다. 최 씨는 ‘주먹은 울어도 인생은 울지 말자’며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청주시 상당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이다. 모두가 단잠에 빠진 새벽 5시가 출근시간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워 청소차량에 몸을 싣는다. 연두색 야광작업복 착용한 채 청주 시내 구석구석을 누빈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지만 청주에서 성장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부터 5학년 때부터 유도를 시작했다. 늘 고기로 회식하는 유도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카페에서 만난 최종찬 씨가 지난 과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실력은 특출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국 초등생 유도대회에서 3등을 한 것이다. 그는 교동초-대성중-청석고 일명 청주 유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촉망 받는 유도 유망주로 성장했다.

유도 국가대표를 꿈꿨지만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고3 당시에 키는 168cm, 몸무게는 55kg이었다. 가장 낮은 체급으로 전국체전에 도전장을 냈지만 입상 하지 못했다. 국가대표의 꿈도 멀어졌다. 대학에서도 유도가 아닌 생활체육을 택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키도 크고 체중도 늘었다.

대학 졸업 후 현실의 벽에 맞닥뜨렸다. 생계문제였다. 방송 댄스강사, 액세서리 도매업, 호텔 시설관리 및 경호, 일반 회사 사무직, 여성 의류 쇼핑몰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하지만 운동만 해온 그에게 사회 적응은 쉽지 않았고 거듭된 사업 실패로 인해 그의 어깨에는 무거운 빚만 가득했다.

2012년 7월에는 믿고 의지했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 하나 뿐인 여동생. 가장이라는 책임까지 어깨에 짊어지게 됐다. 그래서 택한 것이 ‘환경미화원’이었다. 9명 모집에 무려 150여 명이 몰려 무려 16대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 체력시험 만큼은 자신 있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최종찬 씨는 무려 16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단 한번에 환경미화원에 합격해 현재 상당구청 소속으로 근무중이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길은 즐거웠어요. 더러워진 거리가 깨끗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도 많이 느꼈고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에 뿌듯하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늘 허무함이 자리했다. 꼬박꼬박 벌어도 차곡차곡 쌓이지 않고 빚 추렴으로 늘 통장이 허전했기 때문이다. 평소 사람만나기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했지만 2년간 집과 직장만 오갔다. 그러다 2014년 가을 우연히 ‘주먹이 운다’ 광고를 보게 된 것이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지원했다. 유도 선수 출신의 경험을 살려 강력한 그라운드 기술을 선보이며 심사위원들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다. ‘인간청소기’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ROAD FC 선수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환경미화원을 본업으로 하면서 운동을 병행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퇴근 후 쉬지 않고 운동에 매진했다. 2015년 5월 첫 격투기 데뷔전 결과는 패배였다.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두 번째 세 번째 경기도 패배. 연거푸 패배의 아픔을 맛봤다.

2015년 12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ROAD FC 027에서 그는 중국의 이부꺼리에게 꿈에 그리던 첫 승을 거뒀다. 판정까지 가는 접전 끝에 얻은 승리는 너무도 달콤했다.

최 씨는 경기가 잡힌 2~3개월 전부터 훈련에 매진한다.

“3연패 중이어서 이를 악물고 했어요. 정말 일하는 시간외에 운동만 했거든요. 개인 PT도 받고 잠도 줄여가면서 연습했었죠. 그래서인지 첫 승은 저에게 ‘하면 된다’는 큰 자신감을 얻는 소중한 승리였어요.”

1승4패.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한 성적표지만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패를 떠나서 사각 케이지에 올라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요.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관객들이 환호,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그 전율을 잊을 수가 없어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그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바로 현실의 벽이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 다 갚지 못한 빚, 게다가 현실적으로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됐다. 마음은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건이 된다면 격투기에 더 전념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러질 못해요. 아직 남은 빚도 갚아야 해서 지금 하는 일은 쉴 수가 없어요. 솔직히 운동보다 지금 일에 집중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가지는 본업에 충실할 생각이에요.”

지금은 주먹이 울지만 언젠가는 주먹도, 인생도 울지 않으리라. 그의 인생드라마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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