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 장애’… 광기와 천재의 사이에서
‘양극성 장애’… 광기와 천재의 사이에서
  • 세종경제뉴스
  • 승인 2017.12.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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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현 청주 예미담병원 원장

여름의 프랑스 남부 지방은 맑고 화창한 날씨, 선선한 바닷바람과 멋진 풍경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끝없이 펼쳐진 노란색, 보라색의 들판(해바라기와 라벤더 밭)을 보면 어느새 목적지도 잊은 채 넋을 놓고 보게 된다.

남프랑스의 ‘아를’이란 도시는 우리에게 낯설다. 하지만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그는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카페’ 등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색채의 들판이 그림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굵고 강렬한 붓 터치,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화사한 색을 보고 있으면 그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후대에 와 그의 작품은 명화로 불린다. 하지만 그의 삶은 정신병으로 피폐하고 불운했다. 물론 그의 정신병에 대해 현재까지도 많은 정신과의사들이 여러 가지 진단을 하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양극성 장애, 즉 조울병이다.

‘조울병’은 ‘조증’과 ‘우울증’ 상태가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대개 10대에 우울증으로 시작해 일생 동안 4~5회, 많게는 10회 정도 반복되는 우울증 기간과 조증 기간을 거치게 된다. 반고흐가 살던 시대에는 당연히 현대적인 정신과적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그는 3~4차례의 우울증 기간과 조증 기간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 시기에는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동안 우울한 기분과 모든 일상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부적절한 무가치감이나 죄책감, 피로나 활력의 상실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조증 시기에는 자존감의 증가 또는 이유 없이 고양되는 기분, 과대한 사고(극단적으로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주장하는 환자도 있다), 말을 끊을 수 없이 하는 증상, 목표 지향적 활동의 증가, 과도한 쇼핑, 무분별한 성행위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우울증과 조증은 절대 섞일 수 없는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양극단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일생을 거쳐 몇 차례의 우울증과 조증이라는 양극단을 경험하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상태로 지내는 것이 더 많다. 스스로를 저주하며 매사에 무기력하고 언제나 침울한 사람이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살아난다고 하며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양극성 장애는 역사적으로 반고흐와 같은 천재들에게서 생각보다 자주 발견된다. 조증 상태의 양극성 장애 환자는 하나의 단어에 대해 몇 배나 많은 단어들을 연상해 내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지만 아마도 반 고흐와 같은 천재들은 그들의 조증상태의 광기를 예술로 승화시켰으리라 생각한다.

양극성 장애의 유병율은 대략 0.6% 정도 된다. 그러나 양극성 장애는 우울증 보다 유전적인 소인이 더 크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뇌의 기분을 조절하는 부위의 이상으로 설명하며 사회적 스트레스가 유발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극성 장애는 우울과 조증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지만 전술한 대로 우울한 상태에서 지내는 환자들이 많기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짧은 기간에 우울증과 감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대에는 반 고흐가 살던 시대와는 달리 매우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약물치료다. 그리고 재발이 흔하고 반복되는, 병의 특성 상 짧게는 현재의 우울․조증 상태를 치료하고 길게는 생애 전반에 걸쳐 우울기간과 조증 기간이 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치료의 주된 목적이다. 그리고 증상의 정도에 따라 입원을 요하기도 하는데 특히 우울기간에 자살사고가 심하거나 자살 시도를 할 때, 조증이 심해 충동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으로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높은 경우 입원이 필요하다.

최근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SNS 진단이 큰 이슈를 낳았다. 무고한 피해자인 연예인 유모씨가 최근 SNS 게시글을 전보다 많이 자주 올리고 평소 하지 않던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그의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 여겨져 오해를 샀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오종현 청주 예미담요양병원 원장(정신과)

누구나 인생을 살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낀다. 누구나 오전에 슬프고 오후에 즐겁고 기쁠 수 있으며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평소엔 참았던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병적인 기분 이상은 이와 같은 것이 아니며 절대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 따라서 병원에 오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자신이나 지인이 전술한 병적인 기분을 경험한다면 꼭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로 가서 전문의와 상담하실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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