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짓는 늙은이, 가마를 걱정하네
독 짓는 늙은이, 가마를 걱정하네
  • 사진: 송봉화 글: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1.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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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에 놓인 청주시 오송읍 봉산리 가마터

<송봉화, 시간을 호명하다-①>

봉산리 가마 발굴현장.

황순원의 소설 속 독 짓는 늙은이는 화염이 치솟는 가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평생 질그릇을 빚어왔던 옹기장이의 장렬한 최후다. 6대째 옹기장으로 살고 있는 충북 무형문화재 12호 박재환 옹의 가마는 이미 재마저 식었다. 늙은 옹기장이는 외려 가마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다.

2017년 5월까지도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가 들어서는 이곳에는 세 기의 가마가 있었으나 한 기는 이미 개발사가 허물어버렸고 남은 두 기도 굴삭기의 삽날이 언제 찍어 내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다. 개발주의자들은 가마의 연혁만 따진다. 200년에서 단 몇 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통적 가치가 빈약하단다. 몇 년 만 지나면 200년, 300년도 될 텐데 지금은 아니니 부수겠다는 얘기다.

이곳은 미호천이 느리게 흐르며 청주 일대의 고운 흙들을 밀고 와서 토질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옹기가마가 조성된 연유다. 이제 봉산리에는 200여 년 동안 둥지를 틀고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마을은 없다.

박재환 옹기장. 2010년 촬영.

옹기장의 외길인생도 벌겋게 드러난 흙처럼 발가벗겨졌다. 이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울부짖음마저 황량하다.

현재까지 발굴과정에서 나타난 가마는 다섯 기.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언덕에 20여기의 가마가 존재했단다. 급속한 산업사회의 변화는 숨 쉬는 옹기의 역사를 뒤란으로 내몰았다. 그 항아리 속에는 200년 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 마을로 숨어든 1813년생 박예진으로부터 6대에 걸친 처절한 가계사가 깃들어있다.

이미 화석화되어버린 것들을 끄집어내서 상징화하면서 콘텐츠개발이란 이름을 붙여대지만 아직 살아 숨 쉬는 것들의 명줄을 끊어버리는데 앞장서는 행정기관의 이율배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금은 찬 재 날리는 봉산리 가마에 다시 활활 불길이 타오르는 환영이 어른거린다.

송봉화는사진가이자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이다. 그는 우리들의 삶결을 순간으로 정지시켜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든지 그의 작품을통해 흘러갔지만 정지된 시간을 호명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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