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언제부터 새해였을까?
새해는 언제부터 새해였을까?
  • 박한규
  • 승인 2018.01.2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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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漢나라 때 夏나라 전통에 따라 1월을 정월로 고정

<별 보는 어른아이>

음력 정월 초하루는 설날이다. 떡국을 먹고 나이 한 살 더 먹는 날이기도 하지만 지난 한 해를 잘 살아왔기에 스스로에게 격려도 하고 새로 시작하는 한 해를 힘차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는 날이다. 생각해보면 조물주가 있어 세상을 창조한 날을 알려준 것도 아닌데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한 날 한 시를 기점으로 삼아 ‘한 해 살이’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추분이 드는 가을날 동물들의 교미가 시작되는 시점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기도 했다.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의 자연 순환 고리에서 한 해의 출발점이라 여겼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시리우스’가 새벽 동쪽 하늘에 처음 보이면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이 시기 즈음해서 나일강이 범람하기 때문인데, 나일강이 범람할 때를 미리 알 수 있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는 춘분날을 새해의 기준으로 여겨 춘분날이 드는 달의 초승달이 뜨는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았다. 우리가 쓰는 달력인 그레고리력도 춘분을 중시하는 전통에서 본디 3월(March)이 정월이고 윤달이 드는 2월(February)이 마지막 달이었지만 로마 황제들의 권력투쟁의 결과로 현재의 1월(January)이 정월이 된 것이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가면 계절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는 것 말고 정확하게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언제나 같은 시간에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별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요순시대 이래로 천문관측을 통해 농경에 필요한 때를 알리는 것을 제왕의 으뜸가는 업무(관상수시, 觀像授時)로 보았던 중국의 예를 보면 천문관측이 1년의 때를 나누는 역법(曆法)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4절기 가운데 계절의 특정 시점을 지칭하는 절기로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추분, 입동, 동지 등 8개가 있고 나머지는 농경과 관련되는 기후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춘분, 하지, 추분, 동지는 태양의 고도에 따르는 밤낮의 길이에 기초한 고도의 천문학적 관측지식이 필요한 것으로 24절기 구분의 기준점이 된다.

문명의 기원을 살펴보면 지역과 민족에 따라 새해를 나누는 기준점은 다르지만 4절기 가운데 하나를 채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동양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새해의 기준이 되는 음력 정월 초하루는 동지를 지나 봄이 시작되는 절기인 입춘 언저리의 초승달이 뜨는 날이다. 즉, 설날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시작을 의미한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중국과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날’로 지정하고 떡국을 먹었을까? 예상대로 답은 아니올시다. 중국 민족이 중화문명의 모태라고 믿는 주나라는 동짓달(음력 11월, 자월, 子月)을 정월로 삼았다.

동짓날 팥죽 한 그릇을 먹어야 진짜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속담은 여기서 유래한다. 주나라 시대 동지점을 가리키는 별자리는 견우직녀 이야기에 나오는 ‘견우’별자리다. 견우동지초도(牽牛冬至初度)라고 하며 견우직녀 설화는 바로 천문관측의 과학적 은유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속설에 따르면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하는 중국의 역사시대 첫 나라인 은나라는 주나라보다 앞선 문명으로 음력 12월(축월, 丑月)을 정월로 삼았다. 음력 12월을 ‘섣달’이라고 부르는데 ‘설이 든 달’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100년이 넘은 나라의 전통이 언어로 남아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역사 이전의 국가인 하나라는 지금과 같이 음력 1월(인월, 寅月)을 정월로 삼았다.

주나라가 망하고 춘추전국시대가 되면서 중국 학문의 황금시대라 일컫는 제자백가 시대가 오며 천문학, 음양오행학, 철학 등의 학문이 발달하고 천체관측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전국을 통일한 한나라는 기존에 사용하던 달력이 때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관상수시 제왕통치 이념에 따라 정교한 천체관측과 새롭게 무장한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무제 때 새로운 역법 ‘태초력’을 반포한다.

이때 하나라의 전통을 따라 음력 1월을 정월로 정하고 동짓달을 11월로 고정하게 된다. 설날을 정월 초하루라고 불러도 1월 초하루라고 말하지 않는다. 1월은 정월, 즉 한해를 시작하는 달로 고정시켰다는 말이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동짓달(11월)과 정월(1월)이라는 전통이 확립된 것이다.

한나라 때 정월 초하루의 밤하늘에는 북두칠성의 자루(손잡이)가 ‘대각(大角)’ 별자리를 가리키고 있었고 보름달이 대각별자리와 28수(宿) 별자리의 시작자리인 ‘각수(角宿)’를 지나는 자오선에 있었을 것이다. 대각 별자리 양 옆으로 ‘섭제(攝提)’ 별자리가 있는데 섭제란 천문방위상 ‘인(寅)’에 해당한다. 동양 천문학에서 북두칠성은 천제가 타고 다니는 수레를 의미하고 손잡이는 절기를 가리키는 하늘의 나침반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하늘을 살펴 때를 알기 위해서는 북두칠성의 손잡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펴야 한다. 한나라 초기에 이미 목(봄, 동쪽, 寅방위)-화(여름)-토(늦여름)-금(가을)-수(겨울)의 음양오행과 천인감응 사상이 집대성되는 시기로 봄이 계절의 으뜸으로 인식되어 인(寅) 방위와 맞아 떨어지게 된다. 마침 섭제 별자리가 ’인(寅)’ 방향을 가리키니 인월(음력 1월)이 정월이 되는 것은 당시 인식론에 따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보름달의 위치로 태양의 위치를 미루어 짐작했던 것과 다르게 서양에서는 해와 별자리의 관계를 직접 관측을 통해 파악했다. 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까지 존재했던 한나라는 서양천문 전통에 의하면 양자리 춘분점을 통과하는 것이다. 태양이 양자리 춘분점에 있다면 보름달은 정반대 하늘인 처녀자리-각수-대각-섭제 별자리를 지나는 자오선에 있다는 말이다.

기원후 2세기 경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춘분점을 양자리에 고정하는 ‘회귀년(tropical year)’ 전통을 확립한다. 동양과 서양이 접근 방식은 다를지라도 천문관측의 목표점과 성취시기를 비슷하게 공유한다는 점은 놀랍기만 하다.

1.대각(大角): 봄철 대표적인 별자리인 목동자리 알파별, 악투루스(Arcturus).

2.각수(角宿): 처녀자리 알파별, 스피카(Spica). 동양 천문 28수 가운데 첫 번째 별자리로 동방칠수에 해당한다.

3.섭제(攝提): 대각 별자리 양 옆에 3개씩 짝지어 대각을 보좌하는 별자리.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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