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도, 차량도, 운동도 지원 없이…
정당도, 차량도, 운동도 지원 없이…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6.20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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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성광철 후보의 청주시의회 의원 선거 ‘낙선기’
운동원 없이 하루 9시간 나 홀로…950만원으로 선거
검게 그을린 얼굴의 성광철 후보가 낙선기를 들려주러 세종경제뉴스를 찾았다. 사진=이재표 기자

재선, 3선 단체장의 ‘당선기’를 써도 모자랄 판에 무소속 시의원 후보의 ‘낙선기’를 쓰게 되다니…. 청주시의회 ‘아’선거구에 도전했다가 1069표(2.8%)를 얻어 낙선한 성광철 후보를 보면 밑도 끝도 없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떠오른다.

성광철 후보는 7명의 후보 중 6등을 해서 꼴찌만 면했다. 그의 앞에는 1,2등을 한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3,4 등을 한 자유한국당 후보, 3104표를 얻어 5등을 한 바른미래당 후보가 있다.

성 후보는 “떨어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3000표는 얻을 줄 알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사실 그가 흘린 구슬땀, 아니 팥죽땀을 생각하면 3000표도 말이 안 된다. 5958표를 얻어 당선된 3등 후보를 넘어 6000표는 얻었어야 마땅하다.

문제는 그가 그렇게도 경멸하는 ‘정당공천’이 당선을 보증한다는 현실 앞에 섰다는 것이다. 그래도 기죽지 않았다.

성광철 후보는 충북NGO센터가 운영하는 ‘생활자치아카데미’ 1기 수료생이다. 아카데미를 수료한 2013년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해다. 1997년 늦깎이로 청주대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교육청 사서직이 된 성 후보는 2002년 청주시청 사서로 기관 이전을 했다가 2004년 말부터 공직에서 물러나 타이완 출신의 아내와 함께 중국어학원 사업을 시작했다.

‘사회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해 세상에 불거진 청주시의 KT&G 부지 매입을 둘러싼 공무원 독직 사건 때문이다. 부동산 용역업체로부터 받은 6억6000만원을 통장에 보관 중이던 청주시 공무원은 징역 9년에 벌금 7억원, 추징금 6억6020만원이 확정돼 아직도 수감 중이다.

성 후보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청주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그해 무려 138일 동안이나 1인 시위를 벌였다.

성 후보는 “1인 시위와 아카데미 수강이 같은 시점에 진행이 됐다. 처음에는 ‘내가 사는 지역사회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직접 내가 나서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실행에 옮겼다.

마패가 그려진 손 푯말을 들고 거리유세를 벌였던 성광철 후보. 사진=성광철 페이스북

성 후보는 예비후보 기간을 포함해 20일 동안 선거운동을 했다. 기초의회에 대한 정당공천을 반대하기 때문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본격 선거운동 전에는 ‘살인자도 정당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푯말을 들었다.

둘도 없는 막역한 친구가 사무장을 맡고 후보가 직접 회계책임자 역할을 했다. 거리인사에 필요한 선거운동원은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다. 선거운동원 일당이 7만원이니 5명을 선거운동기간 13일 동안 고용하면 500만원 가까이 들 터였다.

선거운동원이 없으니 후보자가 오전 6시부터 하루 9시간 이상 푯말을 들고 거리인사를 했다. 탈진으로 기진맥진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최소 500만원에서 꾸미기에 따라 100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유세차량도 빌리지 않았다. 쓴 거라고는 선거공보와 명함 인쇄비, 밥값 정도다. 선거공보와 벽보, 명함도 인쇄업을 하는 지인의 도움으로 330만원에 해결했다.

선거사무실은 단칸방에 신혼생활을 시작한 성 후보가 임대아파트로 입주했다가 20여 년 전에 분양을 받은 효성아파트 관리동 한 칸을 빌렸다.

시의원 법정선거비용이 4500만원 정도인데, 그는 1000만원이 든 통장을 들고 선거를 시작해서 50만원이 남았다. 쓴 돈 950만원 중 200만원은 선관위에 낸 기탁금이니 실제 선거에 사용한 돈은 750만원이 전부다.

성 후보는 “좋은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더 철저히 준비해서 다시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알고 보니 그는 ‘정당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거대 양당은 공천이 아닌 사천을 하고, 원외정당들은 실익이 없어 보여 무소속을 택한 것이었다. 그의 무소속 도전이 목표에 가까울지, 아니면 정당 및 선거제도의 개혁이 더 빠를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키로 한다.

성 후보는 선거를 앞둔 지난 3월, 학원을 접고 휴식에 들어갔다. 선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1년 간 안식년을 갖기로 해서다. 그는 현재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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