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가슴 뭉클한 말 한 마디
[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가슴 뭉클한 말 한 마디
  • 권희돈 교수
  • 승인 2019.12.06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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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12 야구대회 한국과 멕시코 전. 5회말 2사 후 만루 찬스에 김현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때 그의 귓가에 양의지 포수의 한 마디 말이 떠올랐다. ‘네가 잘 쳐 줘야 내 볼 배합이 편해질 것 같아.’ 김현수 선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초집중하게 된다. 우중간 펜스 가까이 떨어지는 싹쓸이 2루타를 쳤다. 스코아는 73. 승부의 추는 완전히 한국 쪽으로 기울었다. 이 경기 결과로 한국은 도쿄올림픽 진출권을 확보했고, 이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그 경기의 후일담을 읽고는 그 장면을 직접 시청할 때보다도 더욱 큰 감동을 받았다.

 

어느 요양병원 병실의 할머니는 침대 하얀 시트 밑에 현금을 넣어두었다가 가족이 오면 얼마씩 꺼내주었다. 큰며느리가 오자 간병인이 할머니에게 귓속말을 한다. ‘할머니 근데 왜 큰며느님한테는 돈을 안 주세요?.’ 할머니의 답은 쟤는 우리 집 애니까.’ 였다. 이 소릴 들은 큰며느리는 그간 시어머니를 모시며 고부간의 있었던 모든 갈등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도 시어머니의 깊은 믿음에 감격하였다는 말을 누누이 되뇌었다.

 

는 정돈된 언어로 시인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형식이다. 몇 해 전 3월 첫 강의에 졸시 <첫날> 학생들과 같이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다음 주 강의가 끝나자 한 여학생이 나를 따라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고마운 게 뭐냐고 물었다. 첫사랑의 시련 때문에 학교도 포기하고 학교가 있는 도시도 싫다며 집으로 가서 방속에 갇혀 사는 친구에게 <첫날>1,2행을 문자로 날렸어요. 문자를 받은 친구가 갑자기 제정신을 찾았어요. 다시 학교를 다닌다며 짐을 싸가지고 왔어요.

 

오늘은 그대 남은 날들의 첫날

부디 지난 날의 회한에 물들지 마오.

 

이 두 문장은 우울증으로 방에 박혀 지내던 학생의 내면을 깊숙이 터치하여 정신을 일깨운 공감대화법이라 할 수 있다. 죽음에 이른 학생을 다시 정상적인 젊은이로 바꾸어놓은 연금술적인 언어이며, 미움의 과거를 잊게 하고 미래의 날개를 펴게 한 희망의 언어이다. 내가 쓴 시 한 구절이 젊은 학생의 생명을 구했다고 생각할 적마다 나는 늘 가슴이 뿌듯하다. 한 생명이 죽음에서 회생했다고 하는 것은 사라져 버렸을 그의 미래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첫째에 치이고 막내에 치여서 둘째는 스스로 살 길을 찾는다. 그래서 둘째는 산만하다. 부모는 왜 둘째가 산만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귀찮게만 여긴다.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아빠가 나도 사랑하네.’ 배우 성동일 씨의 둘째인 성 빈 어린이가 툭 던진 말이다. 성 빈 어린이에게는 서운한 감정의 말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딸의 이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식에 대한 편애하는 태도를 짚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심코 어린 딸이 던진 한 마디 말에 아빠가 뼈아프게 공감했기에, 아빠는 기울어진 자식에 대한 태도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 세상 모든 아빠 엄마들이 성 빈 어린이의 이 한 마디 말에 공감하기를 바란다.

 

남자 군인 장교와 여 간호장교 부부에게 어느 날 시련이 닥쳐왔다. 아내가 의료 사고로 실명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아내는 다니던 직장에 계속 나갔다. 남편은 언제나 출퇴근 시간에 아내와 함께 하였다. 언젠가는 아내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직장을 오고 가는 과정을 잘 설명하였다. 아내가 출퇴근길을 혼자서 익숙하게 다닐 수 있을 즈음, 남편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버스정류장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아내를 보내고 맞이하였다. 얼마쯤 지났을 때 버스 운전기사가 실명한 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부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십니다.”

 

부인은 이 소릴 듣고 자기 같은 눈먼 사람이 뭐 행복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운전기사가 다시 말을 받았다. 제가 한평생 버스를 몰고 다녔지만, 이렇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남편이 정류장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어주는 부부는 처음 봤습니다. 부인은 그때서야 남편이 매일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음을 알고 자신이 행복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버스운전기사의 한 마디 말은 상대로 하여금 공작새처럼 화려한 깃털을 펼치게 하는 최상의 말이었던 셈이다.

 

말은 씨가 되기도 하지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기도 한다. 선연도 악연도 말로 맺는다. 그래서 절집 예불은 입으로 지은 죄를 소멸해 달라는 정구업진언으로 시작하고, 성당 미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는 참회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말은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항상 신중해야 한다. 홧김에 하는 말은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 될 수 있지만, 가슴 뭉클한 말 한 마디는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가슴 뭉클한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상대의 깊고 간절한 마음을 터치해주는 말이다.()

 

 

 

 

권희돈 교수는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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