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희의 茶이야기] 차(茶)의 맛과 멋
[박숙희의 茶이야기] 차(茶)의 맛과 멋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08.23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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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문화협회 박숙희 충북지부장

[한국차문화협회 박숙희 충북지부장] ‘여러분, 차맛이 어때요?’ 유치원 아기들 다도교육 때 차를 우려 주고 물으면, ‘우웨, 써요.’ 라고 답하기 일쑤이다.

처음 차를 맛보는 사람들은 차맛을 쓰다고 한다. 차를 즐겨 마시는 이들은 차맛을 달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듯 식감도 다른가 보다. 입안에 한모금 머금고 가만히 음미하면 다섯 가지 맛, 오미(五味)가 느껴진다. 쓴맛, 떫은맛, 신맛, 짠맛, 단맛.

첫아이를 낳고 난산으로 사흘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는 아이의 상태가 너무나 궁금했음에도 아이를 보러 가지 못했다. 아이는 정상인가? 이상한 신체의 일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가락은 다섯 개인가? 문병객이 오면 궁금증을 못 참고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퇴원을 하면서 남편이 안고 온 아이를 처음 볼 때 나도 모르게, ‘어머나 너무 예쁘다!’라고 소리를 질러 고슴도치 웃음거리가 되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오고 말썽을 부리는 아들이 참 대견해 보이고 모두를 용서하게 된다. 그날의 행복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목을 축이던 차 한 잔은 달고도 단 맛으로 행복 그 자체였다.

50원짜리 동전 하나로 온종일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쪼그리고 앉아 전자오락에 몰입하여 밥 먹는 것도 연일 잊어버리던 아들놈을 호된 회초리질 후 내쫓고, 지금쯤은 대문 옆에 쭈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문을 열었는데 아이가 없었다. 집 옆 공터에서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던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마신 차 한 잔은 눈물과 함께 쓰고도 썼다.

학과보다 대학을 먼저 생각하여 대학진학을 시키고 졸업 후 지금까지도 후회를 하는 순간의 차맛은 신맛인 듯 떫기도 하다. 홈쇼핑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주머닛돈을 아껴 여유가 생긴 때는 차맛이 짭조름하다.

차의 오미 속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쓴맛은 인생의 괴로움을 나타낸다. 떫은맛은 살면서 저지른 실수를, 신맛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저지른 오만함을 의미한다. 아끼고 절약한 알뜰한 삶은 짠맛, 인생의 행복하고 즐거움은 단맛에 비유할 수 있다.

차의 오미는 복합적으로 인간의 괴로움을 씻어주기도 한다. 일이 안풀리고 스트레스가 가득하여 속이 더부룩하고 뒷목이 뻑적지근할 때 커다란 머그잔 가득 따끈한 차를 우려 천천히 마셔 보라. 가슴은 뻥 뚫리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산군 때 이목(李穆)선생도 <다부(茶賦)>라는 글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면 창자까지 깨끗해지고, 두 잔을 마시니 마음이 상쾌해 신선이 된 듯하고, 석 잔을 마시니 두통이 사라지고, 넉 잔을 마시니 근심과 울분이 사라진다며 차의 효능을 말하였다.

늦더위로 심신이 피곤한 오늘 온가족이 함께 차 한 잔 마시며 정담을 나눠보면 어떨까. 행복하고 즐거움 속에 어느 때보다 달착지근한 여름날의 차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박 숙 희 한국차문화협회 충북지부장

▶ 충북대 평생교육원 인성차문화예절지도사 강사

▶ 한문교육학 박사

▶ 서일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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