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렬 칼럼] 일본 경제불황의 교훈과 한국
[허석렬 칼럼] 일본 경제불황의 교훈과 한국
  • 김승환 기자
  • 승인 2016.09.22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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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허석렬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989년 일본의 아키히토 텐노(연호 헤이세이)가 즉위하면서 일본경제는 심각한 불황을 겪게 되었다. 이 불황은 일본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려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파생시켰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은 아키히토가 즉위하면서부터 10년 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그러나 일본이 겪고 있는 불황의 여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의 세계적인 장기불황 국면 속에서 일본인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이 불황은 헤이세이 연호를 쓰면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헤이세이 불황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에 군수물자를 공급함으로써 고도성장의 기회를 포착했고 1950년대에는 연 평균 10%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60년대에도 이런 고도성장이 지속되면서 일본의 공산품은 세계를 석권하기 시작했다.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의 석유위기는 미국의 제조업에는 큰 타격을 가했지만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자동차와 소형 가전제품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일본 업체들을 국제적 경쟁에서 큰 승자가 되었다. 

 일본과 당시 서독의 이런 눈부신 경제성장과는 달리 미국경제는 베트남 전쟁과 군수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자동차, 철강, 가전 등 대부분의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하면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의 급증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와 서독의 마르크화의 가치를 8% 내외로 인상시키게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합의를 통해 달러화의 가치는 급락하여 얼마안가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거의 100% 절상되었다.

 이렇게 엔화의 가치가 절상되자 일본 정부는 일본산 제품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은행 이자율을 대폭 낮추어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려 했다. 그런데 저금리는 일본의 제조업이 아니라 건설업에서의 과잉투자와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내었으며 결국 아키히토 텐노의 즉위시기에 거품이 폭발하면서 은행과 금융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부실화돼 장기적 불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헤이세이 불황은 결국 일본의 제조업에도 영향을 끼쳐 철강, 반도체, 정보기기, 가전 등의 산업에서 한국과 대만 등의 추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지금 한국이 처하고 있는 상황은 헤이세이 불황이 발생하고 전개되는 역사적 경험과 놀랄만큼 유사하지만,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과 정책적 유연성은 오히려 일본보다 훨씬 떨어진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산업구조를 전환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4대강 개발 등에 천문학적 국가 자금을 쏟아붇고 재정을 방만히 운용해 재정적자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유럽국가들의 재정적자가 사회보장에 들어가는 재정과 조세수입 사이의 불균형에서 나온 것과는 달리 한국은 이렇다할 사회보장정책을 실행하고 있지 않다. 의료보험은 현재 큰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연금기금도 군인연금을 제외하고는 아직 재정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채무가 급증하는 것은 앞으로의 경제운용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그리고 소득의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으며, 해운업체의 도산, 조선업등 주요 산업의 붕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아직까지 자산거품을 유지하고 키우는 정책을 쓰고 있으며 재정적자를 완화하는 정책 대신에 재정적자를 오히려 키우는 조세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도 실패하고 있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고용불안과 하청업체 및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를 심화시켜 내수시장의 불황을 증폭시키며 사회적 갈등의 수위도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다 국제 정치적인 요인에 의한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이미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개성공단에 투자한 수많은 중소기업이 파산했고, 북한의 핵무장 진전으로 인한 안보위기, 사드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수출지향적인 한국 경제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고 한국경제가 당면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정치적 지도력과 관료제의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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