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희의 차이야기] 호리병 속 삶을 꿈꾸며
[박숙희의 차이야기] 호리병 속 삶을 꿈꾸며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09.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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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문화협회 박숙희 충북지부장] 불교가 국가의 근본이었던 고려 때에는 뛰어난 학승이 특히 많았다. 그 대표적 인물 중 한 분인 원감국사(1226~1292)는 그 삶 자체가 드라마와 같다.

원각국사가 지은 책 중에서

국사의 속성은 위(魏), 이름은 충지(沖止), 원감(圓鑑)은 시호이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도에 매진하고자 했으나 부모의 허락이 없어 관직으로 나가 19세 때 문과에 장원한다.

벼슬이 한림(翰林)에 이르는 장래가 촉망되는 문재(文才)였으나 29세에 출가하여 김해현 감로사의 주지로 있다가 61세에 제6세 국사가 되었다. 원나라 세조가 흠모하여 연경으로 초청해 극진한 대우와 금란가사 등의 귀한 선물을 내렸다.

시문에도 능하여 동문선에 그의 작품이 실려 있고, ≪해동조계제육세원감국사가송(海東曹溪第六世圓鑑國師歌頌)≫에 그의 시가가 전한다.

속세를 떠난 청아한 삶을 노래한 국사의 차시(茶詩) <난송선사 인공의 운에 따라 답하다(次韻答蘭松禪師印公)> 속에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가을이 담겨 있다.

 

鷄山最深處신성한 높은 산 가장 깊은 곳

高臥遠紛華속세 벗어나니 권세와 부귀는 멀어지기 마련

鏡裏元無翳거울 속 같은 밝은 길은 원래 가려진 것 없으니

壺中自有家내 머무는 곳은 저절로 선경 속 집이구나

 

庭空松子落텅빈 뜨락엔 솔방울 뚝뚝 떨어지고

室靜篆煙斜고요한 방안엔 향 연기 꼬불꼬불

何以療飢渴무엇으로 굶주림과 목마름을 다스릴까

香蔬與釅茶향기로운 나물과 진한 차가 있나니

 

5언 율시이다. 수도에 매진한 도력 높은 난공선사 인공이 차를 보내며 어찌 살고 있는지 안부를 편지삼아 시 한 수 보내오셨나 보다. 정성과 염려가 가득 담긴 차와 시를 받은 선사는 얼마나 기뻤을까?

예부터 우리는 최고의 선물로 차를 보내곤 했다. 특히 고려 때에는 차는 고귀한 물건으로 여겨져 임금이 신하에게 차를 내리기도 했다. 왕실과 대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차를 선물하고 마시며 평민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선사는 감사의 마음으로 답시를 썼다. 속세와 멀리 떨어진 깊은 산. 이 속은 신선세계로 세속의 욕심은 흔적조차 없다. 행여나 벼슬길 미련이나마 남아 있는지 물어볼 것도 없으니 이곳이야말로 호중(壺中)이다.

호중은 선경(仙境)을 의미한다. 후한 때 시장에서 약 파는 어떤 노인이 시장을 파하면 머리맡 병 속으로 뛰어들곤 했는데, 비장방(費長房)이란 사람이 노인을 따라 그 병 속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곳이 옥당(玉堂)이었다. 그곳에서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를 실컷 즐기고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신선세계는 호리병 속처럼 분리된 공간이다. 그러나 한 발만 들여놓으면 곧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가 별세계라고 여기며 곁에 두고도 못 보는 것은 아닐까. 국사는 스스로 비방장이 되어 그 피안의 세계에 들어간 것을 노래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묻는다. 벼슬하는 것보다 만족스러운지를.

드디어 국사는 노골적으로 들려준다. 솔방울 하나가 얼마나 넓은 공간을 채울 수 있는지. 향 피운 연기 따라 얼마나 많이 옥당을 오갈 수 있는지를. 그리고 조용히 우리에게 묻는다. 화려한 치장과 좋은 음식이 행복의 척도인가. 나물 한 그릇, 차 한 잔의 만족감을 모르면서 어찌 큰 것의 즐거움은 알겠는가.

솔바람 소리 고요한 산사의 생활에서 탈속한 도인의 면모를 엿본다. 진한 차로 마음을 다스리며 고요히 득도의 길을 가는 삶이 평화롭기만 하다.

 

박 숙 희 한국차문화협회 충북지부장

      ▶ 충북대 평생교육원 인성차문화예절지도사 강사

      ▶ 한문교육학 박사

      ▶ 서일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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